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벨기에의 샤를로트 (문단 편집) === 남편의 죽음 이후와 말년 === 카를로타는 이후 [[편집증]]이 점점 심해져 자신이 독살될 것이라고 믿고, 음식을 거부하는가 하면 [[로마]]에 있는 분수의 물을 먹기도 했다. 혹은 [[비오 9세]]에게 가서 교황은 독살 당할리가 없다 생각해 그가 마실 코코아를 냅다 손가락으로 찍어 먹었고 멕시코에 대해 한창 떠들어 댔으며 교황과 같은 식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. 둘째 오빠 [[레오폴드 2세]]는 이러한 여동생의 상태에 충격을 받아 그녀를 [[트리에스테]] 미라마레 성에 보낸다.[* [[막시밀리아노 1세|막시밀리안]]이 1860년에 지은 성으로, 멕시코의 황제가 되기 전 행복한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.] 이후 카를로타는 시동생 [[카를 루트비히(1833)|카를 루트비히 대공]]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레오폴드 2세는 아내 [[마리 헨리에테 안네|마리 헨리에테]]를 [[빈(오스트리아)|빈]]으로 보내, 아내의 5촌이자 카를로타의 남편 막시밀리안의 큰 형인 [[프란츠 요제프 1세]]에게 카를로타를 부탁하기도 했다. [[막시밀리아노 1세|막시밀리안]]이 총살된 당시 카를로타의 정신병은 너무 심해서 차마 남편의 사망 소식을 알릴 수 없을 정도였다. 의료진의 승인을 받아 그녀의 올케 [[마리 헨리에테 안네|마리 헨리에테]]는 막시밀리안이 [[브뤼셀]]에 온다고 거짓말을 했다. 이 거짓말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고, 카를로타는 미라마르 성을 떠나 친정 [[벨기에]]로 돌아갔다. 벨기에에 돌아온 카를로타는 메이서의 부슈 성에 유폐됐다. 성에 머무르는 동안 그녀는 오빠 [[레오폴드 2세]]와 조카들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. [[제1차 세계 대전]]이 일어나는 동안 카를로타의 벨기에 영지는 [[독일군]]에게 점령되었으나, 카를로타는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의 대공비였기 때문에 공격을 받지는 않았다. 카를로타는 나이가 들어 병이 점점 심해졌지만 역으로 [[편집증]]은 약해졌다.[* 사실 건강이 나빠지면 편집증을 부릴 수 있는 힘이 없어지기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. 실제로 정신질환자들도 건강이 나쁘면 더 이상 발광하지 못한다.]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사랑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남편과의 행복했던 순간을 생각했다. 막시밀리안이 총살된 지 60년 후인 1927년 1월 19일, 카를로타는 [[폐렴]] 증세가 불러온 [[인플루엔자]]로 부슈 성에서 눈을 감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